간송 전형필 — 집 열 채 값으로 산 책 한 권

살 나라가 없어서, 한 사람이 샀다

간송 전형필은 1940년에 책 한 권을 사면서 기와집 열 채 값을 치렀습니다. 그 책이 지금의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입니다. 값을 부른 쪽은 천 원을 생각했는데, 낸 쪽은 만 원을 내밀었습니다.

이상한 건 그 다음입니다. 산 사람은 산 사실을 한동안 감췄고, 신문에는 소장자가 그저 시내의 모씨라고만 적혔습니다. 왜 국보를 사고도 숨겨야 했을까요.

쇼츠 퀴즈 정답은 이 글의 퀴즈 정답 구간에 있습니다. 더 어려운 심화 퀴즈도 준비했고, 정답은 맨 아래 클릭 블록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안동의 오래된 집에서 나온 책, 그리고 간송 전형필

1940년의 조선은 우리말이 밀려나던 자리였습니다. 학교에서 조선어 교육이 금지된 것이 1938년, 창씨개명이 단행된 것이 1940년입니다. 그해 여름에는 종합 일간지 폐간까지 예정돼 있었습니다.

바로 그 무렵, 경상북도 안동의 한 고가에서 낡은 책 한 권이 나옵니다. 찾아낸 사람은 이한걸의 셋째 아들 이용준이었고, 그때 스물넷이었습니다. 그는 명륜학원에서 배운 스승 김태준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

김태준은 당시 경학원 강사였습니다. 훈민정음 원본의 존재를 강의에서 언급한 적이 있었고, 제자가 그 강의를 기억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김태준이 이 책을 들고 찾아간 사람이 수집가 간송 전형필이었습니다.

간송 전형필은 그때 서른넷이었습니다. 와세다대학 법과를 마치고 돌아와 고희동의 소개로 오세창과 교류하면서 문화재를 모으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1935년에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이만 원, 당시 기와집 스무 채 값에 사들였습니다.

김태준이 하필 그를 찾아간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1937년 영국인 변호사 존 개스비의 고려청자 일괄을 인수했고, 이듬해인 1938년에는 성북동에 보화각을 세운 참이었습니다. 값을 알아볼 사람이 그 무렵 달리 없었던 것입니다.

간송 전형필이 오동나무 상자를 품에 안고 눈길 피난 행렬을 걷는 김홍도 풍 만평
모두가 살림을 지고 갈 때 그는 상자 하나만 안았다고 전한다.

만 천 원, 그리고 이어진 침묵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값을 전해 들은 간송 전형필은 곧장 은행으로 향했습니다. 찾아온 돈은 만 천 원. 만 원은 책값으로, 나머지 천 원은 수고비로 건넸다고 합니다. 기와집 열 채 값이라는 표현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다만 이 금액의 환산은 당대 시세를 어림한 통용 표현입니다. 정밀한 산정치는 아니라는 점은 짚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액수 자체가 아니라, 부른 값보다 더 많이 냈다는 방향입니다.

그런데 매입 직후의 행동이 더 눈에 띕니다. 이 책의 존재는 1940년 7월 30일 조선일보에 방종현의 글로 처음 소개되는데, 소장자는 실명 없이 시내의 모씨로만 적혔습니다.

소장자가 누구인지 공개된 것은 2년이 더 지난 1942년입니다. 최현배가 한글갈에서 원본을 고증하며 소장자를 처음 밝혔습니다. 국보 지정은 1962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1997년의 일이었습니다.

감춘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됩니다. 조선어가 학교에서 지워지던 때에 한글의 원리를 담은 책을 샀다고 알리는 일은 그 자체로 위험했습니다. 간송 전형필이 택한 것은 자랑이 아니라 보관이었습니다.

간송 전형필이 산 책에만 있었던 것

그전까지 널리 전해진 것은 언해본 계열이었습니다. 언해본에는 글자를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담기지 않았습니다. 창제 시기나 주체는 조선왕조실록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만든 원리만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창살 모양을 본떴다는 식의 추측이 돌았습니다. 자음이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떴다는 설명은 오직 해례본에만 실려 있었습니다. 이 한 권이 나오면서 추측이 설명으로 바뀐 것입니다. 더 자세한 배경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훈민정음 항목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만평 해설 — 두께의 역전

간송 전형필과 김태준, 이용준이 마주 앉은 1940년 사랑방을 그린 김홍도 풍 만평
값을 정정하는 손. 놀란 쪽은 파는 사람이었다.

첫 번째 연출 장치는 두께입니다. 간송 전형필 앞의 서안 위에 지폐 뭉치와 책이 나란히 놓여 있는데, 돈이 훨씬 두껍고 책은 얇습니다. 값과 부피가 정반대로 뒤집혀 있고, 그 역전 자체가 이 장면의 풍자입니다.

두 번째는 문틈의 그림자입니다. 오른쪽 장지문 밖으로 사람 그림자가 길게 누워 있습니다. 이 거래가 왜 감춰져야 했는지, 소장자가 왜 모씨로만 적혔는지를 그림이 먼저 말해 줍니다.

인물 크기도 그대로 순서입니다. 값을 정하는 사람이 가장 크고, 놀란 중개인이 그 다음이며, 판 사람은 가장 작게 구석에 앉아 있습니다. 파는 쪽이 값을 몰랐다는 사실이 크기로 드러납니다.

오늘의 통찰 — 제도가 비운 자리

이 이야기를 미담으로만 읽으면 절반이 빠집니다. 1940년에는 이 책을 살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사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살 주체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빈자리에 개인의 지갑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이 장면은 한 개인의 선행담이라기보다, 지켜야 할 주체가 사라졌을 때 무엇이 남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에 가깝습니다. 남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가치를 알아본 사람의 주머니였습니다.

직장을 내놓은 사람, 박병선

32년 뒤에 비슷한 일이 프랑스에서 벌어집니다. 박병선은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전시에 직지심체요절을 내놓고, 이 책이 구텐베르크 성경보다 앞선 금속활자본임을 국제 학계에 확인시켰습니다.

1975년에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분관 창고에 방치돼 있던 외규장각 의궤의 행방을 밝혀냅니다. 그 일로 그는 도서관을 떠나게 됐고, 이후에는 개인 자격으로 열람실을 드나들며 의궤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누가 시킨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산이 배정된 사업도, 기관이 맡긴 과제도 아니었습니다. 의궤가 돌아온 것은 2011년이고, 그는 같은 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 사람은 돈을, 한 사람은 시간을

두 사람이 낸 것은 달랐습니다. 간송 전형필은 돈을 냈고 박병선은 직장과 시간을 냈습니다. 그런데 구조는 같습니다. 맡을 주체가 비어 있는 자리에, 가치를 아는 개인 한 명이 자기 것을 밀어 넣었습니다.

우리가 국보라고 부르는 것들을 뒤집어 보면 이런 이름이 자주 나옵니다. 제도가 지켜낸 목록이 아니라, 개인의 결심이 남긴 목록에 가깝습니다. 미담이라 부르기에는 대가를 치른 쪽이 늘 한 사람이었습니다.

회사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습니다. 부서가 없어진 뒤에도 자료를 개인 저장소에 남겨 둔 사람, 담당이 비어 있는 일을 조용히 이어 간 사람. 간송 전형필의 만 천 원과 박병선의 십수 년은 규모만 다를 뿐 같은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다만 그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은 대체로 없습니다. 값을 치른 쪽은 이름을 남기지만, 그 값을 대신 내 준 제도는 끝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국보 번호 옆에 개인의 이름이 붙어 있는 이유입니다.

살 나라가 없어서, 한 사람이 샀다

쇼츠 퀴즈 정답

정답: 3번 — 어떤 원리로 만들었는지

창제 시기와 주체는 실록에 남아 있어 이 책이 없어도 알 수 있었습니다. 반면 자음이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떴다는 제자 원리는 해례본에만 실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창살을 본떴다는 식의 추측이 진지하게 오갔습니다. 집 열 채로 산 것은 책이 아니라 한글의 설명서였던 셈입니다.

심화 퀴즈 — 이건 좀 어렵습니다

정답은 이 글 맨 아래 클릭 블록에 있습니다. 스크롤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 보세요.

해례본 소장자의 실명이 세상에 처음 공개된 시점은 언제일까요?

① 1940년, 조선일보에 이 책이 처음 소개되던 때

② 1942년, 최현배가 한글갈을 펴내던 때

③ 1945년, 광복 직후 신문이 다시 나오던 때

지난 편에서는 230년을 버틴 나라가 어쩌다 교과서 한 줄이 됐는지 다뤘습니다. 아무도 적지 않아서 사라진 이야기는 제60편 발해 대조영에 있습니다.

다음 편 예고 — 제62편 신사임당

한 사람이 사서 남긴 이야기 다음은, 남겼는데 이름이 바뀐 이야기입니다. 풀벌레를 들여다보며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림은 남았는데, 후대가 기억한 이름은 어머니였습니다. 현모양처라는 말은 언제 붙은 것일까요.

만평한국사는 한국사의 한 장면을 김홍도 풍 만평과 퀴즈로 풀어냅니다. 구독해 두시면 다음 편을 놓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국보 값을 개인이 치른 이 일, 미담으로 보시나요 아니면 부끄러운 기록으로 보시나요. 댓글로 알려주세요.

심화 퀴즈 정답 보기 (클릭)

정답: 2번 — 1942년, 최현배의 한글갈

1940년 조선일보 기사에서 소장자는 시내의 모씨로만 적혔습니다. 실명이 밝혀진 것은 1942년 최현배가 한글갈에서 원본을 고증하며 소장자를 공개했을 때입니다.

광복 직후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한복판에서 공개된 것이라, 감춰 두는 일과 알리는 일 사이의 판단이 그만큼 조심스러웠음을 보여 줍니다.

살 나라가 없어서, 한 사람이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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