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표 33인 태화관, 탑골공원에 없었던 이유

민족대표 33인 태화관 방 안에서 수화기를 든 소매와 300m 떨어진 탑골공원의 빈 단상을 대비한 3·1운동 한컷 만평

1919년 3월 1일 오후, 서울 탑골공원 팔각정 앞에는 수천 명의 학생과 시민이 모여 있었습니다.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린 민족대표 33인이 이곳에 나타나 선언서를 읽기로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 단상은 비어 있었습니다. 민족대표들은 그 시각, 약 300m 떨어진 인사동의 요릿집 태화관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33인이 탑골공원에서 선언서를 읽었다”는 장면은 실제와 다릅니다. 왜 이런 … 더 읽기

이육사 이름 유래, 수인번호 264와 1년 7개월의 진실

이육사 이름 유래를 그린 만평, 1927년 대구형무소에서 간수가 청년 이원록의 등에 수인번호 264를 도장으로 찍는 장면

이육사 이름 유래는 한 번의 폭탄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1927년 10월 18일 대구.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벌꿀’이라며 배달된 상자가 터졌습니다. 독립운동가 장진홍이 만든 폭탄이었습니다. 일제 경찰은 범인을 잡지 못한 채 대구의 청년들을 줄줄이 잡아들였고, 그 가운데 스물 몇 살의 청년 이원록이 있었습니다. 대구형무소에서 그에게 붙은 번호는 264. 우리는 이 번호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광야」와 「청포도」의 시인, 이육사의 … 더 읽기

애국가 곡조 퀴즈: 1945년 해방의 날 부른 애국가는 어떤 곡조였을까?

애국가 곡조 퀴즈 만평 – 1945년 해방의 날 남녀노소가 태극기를 들고 애국가를 부르고 악보 제목은 태극기에 가려진 장면

애국가 곡조 이야기는 1945년 8월에서 시작합니다. 해방 소식이 퍼지자 서울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갓을 쓴 할아버지부터 아기를 업은 어머니, 학생모를 눌러쓴 소년까지 저마다 손으로 그린 태극기를 들고 목청껏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서른다섯 해 만에 마음 놓고 부르는 나라의 노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거리에 울려 퍼진 애국가 곡조, 지금 우리가 국민의례 때 듣는 그 가락과 같았을까요? 이번 … 더 읽기

조선어학회 사건, 빼앗긴 사전 원고를 지킨 뜻밖의 상자

조선어학회 사건 때 압수된 조선말 큰사전 원고가 1945년 9월 경성역 창고의 쇠창살 상자 안에 쌓여 있고, 역무원의 손이 주홍 꼬리표를 뒤집으려는 AI 생성 만평

조선어학회 사건 때 일제가 빼앗아 간 『조선말 큰사전』 원고,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 알고 계셨나요? 1942년 일제는 우리말 사전을 만들던 학자들을 잡아 가두고, 13년 동안 모은 원고를 ‘증거물’로 압수했습니다. 영화 「말모이」로 많은 분이 아시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해방되고 3주쯤 지난 1945년 9월, 그 원고가 서울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화물 창고의 한 상자 안에서 다시 나타났습니다. 압수된 곳은 … 더 읽기

광화문 철거를 막아선 손, 뜻밖의 주인

광화문 철거 계획이 세워진 1922년, 비계를 두른 거대한 돔 청사 앞에서 '총독부' 꼬리표의 손이 광화문 위로 쇠망치를 쳐들고, 같은 쪽에서 나온 회색 양복 손이 그 손목을 붙잡은 AI 생성 만평

광화문 철거 계획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1922년, 조선총독부는 경복궁 앞에 거대한 새 청사를 지으면서 궁궐의 정문 광화문을 헐어 없애려 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광화문이 새 청사를 가린다는 것이었습니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이나 졸업 사진 속 광화문을 떠올려 보세요. 그 뒤에는 늘 돔을 얹은 커다란 석조 건물, ‘중앙청’이 서 있었습니다. 바로 그 건물 때문에 광화문은 … 더 읽기

남산 조선신궁, 꼭대기 사당이 쫓겨난 이유

남산 조선신궁이 들어선 1925년, '총독부' 꼬리표를 단 소매 낀 손이 남산 꼭대기의 작은 국사당을 들어 옮기고, 그 아래 중턱에 거대한 도리이와 신궁이 선 AI 생성 만평

남산 조선신궁은 1925년 일제가 서울 남산 중턱에 세운, 조선에서 가장 격이 높은 신사입니다. 일본의 태양신 아마테라스와 메이지 천황을 모신 곳이었죠. 남산 팔각정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 꼭대기에는 원래 나라의 수호신을 모신 사당, 국사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산 조선신궁이 들어서던 해, 이 사당은 산을 떠나 인왕산으로 옮겨 가야 했습니다. 저렇게 큰 신궁을 지어 놓고, 왜 … 더 읽기

창경원 동물원의 명분은? 궁궐에서 ‘궁’이 지워진 날

창경원 동물원이 들어선 1909년, 궁궐 현판에서 '통감부' 꼬리표를 단 소매 낀 손이 주홍빛 '宮' 글자를 지렛대로 떼어내고 '苑' 판을 든 채, 아래 마당의 원숭이 우리와 구경꾼을 내려다보는 AI 생성 만평

봄이면 도시락을 싸 들고 원숭이와 사자를 보러 가던 곳, 밤이면 등불 아래 벚꽃 구경으로 북적이던 곳. 많은 분들이 창경원 동물원을 소풍의 추억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곳은 원래 동물원이 아니라 조선의 궁궐, 창경궁이었습니다. 1909년 궁궐 마당에 동물원·식물원·박물관이 들어섰고, 1911년부터는 이름에서 ‘궁(宮)’이 빠지고 ‘원(苑)’이 붙었습니다. 그 이름이 다시 ‘궁’으로 돌아온 것은 해방되고도 38년이 지난 1983년의 일입니다. 정말 곱씹을 … 더 읽기

윤봉길 도시락 폭탄의 진실 — 실제로 던진 것은 물통

윤봉길 도시락 폭탄을 다룬 흑백 만평, 1932년 상하이 전승 축하식 단상에서 장갑 낀 손이 축배를 들고, 그 아래 도시락과 끈 달린 물통이 일본 신문 위에 나란히 놓여 있다

윤봉길 도시락 폭탄. 교과서와 위인전에서 한 번쯤 들어 본 이름입니다.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는 일본 왕의 생일 행사와 상하이 점령을 기념하는 전승 축하식이 함께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 단상을 향해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졌고, 일본군 수뇌부가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당시 판결문과 신문조서를 펼쳐 보면, 우리가 90년 넘게 불러 온 ‘윤봉길 도시락 폭탄’과는 조금 다른 … 더 읽기

고종 커피 독살 사건, 진짜 싸움은 법정이었다

고종 커피 독살 사건 뒤 법부대신의 손가락이 옛 형률 쪽 저울을 눌러, 판결문과 비녀가 놓인 접시가 들려 있는 흑백 만평

고종 커피 독살 사건은 1898년 9월, 대한제국 황제 고종과 황태자가 마실 커피에 아편이 들어간 사건입니다. 흔히 “커피 맛이 이상한 걸 알아챈 고종이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고종 커피 독살 사건의 진짜 싸움은 커피잔이 아니라 그 뒤의 법정에서 벌어졌습니다. 주범의 아내를 어떻게 벌할 것인가. 이 질문 하나를 두고 근대식 재판소와 폐지된 옛 법이 맞붙었습니다. 1898년 … 더 읽기

서울 전차 소각 사건(1899) — 사과 대신 나온 조건 | 한컷만평퀴즈

1899년 서울 종로에서 '개통 축하' 현수막 아래 '근대화' 꼬리표를 단 전차가 불타고, 흰옷 입은 사람들이 뒷모습으로 서 있으며 비어 있는 운전대 옆 바닥에 놋쇠 손잡이가 떨어져 있는 AI 생성 만평

한컷만평퀴즈 · 한 컷으로 읽는 역사의 아이러니 서울에 처음 전차가 달린 해는 1899년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 전차를 고종이 들여온 근대화의 상징, 훗날 70년 가까이 ‘서울 시민의 발’이 된 신문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 첫 전차가 달리기 시작한 지 몇 주 만에 서울 사람들 손에 불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른바 서울 전차 소각 사건입니다. 1899년 …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