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표 33인 태화관, 탑골공원에 없었던 이유

민족대표 33인 태화관 방 안에서 수화기를 든 소매와 300m 떨어진 탑골공원의 빈 단상을 대비한 3·1운동 한컷 만평

1919년 3월 1일 오후, 서울 탑골공원 팔각정 앞에는 수천 명의 학생과 시민이 모여 있었습니다.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린 민족대표 33인이 이곳에 나타나 선언서를 읽기로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 단상은 비어 있었습니다. 민족대표들은 그 시각, 약 300m 떨어진 인사동의 요릿집 태화관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33인이 탑골공원에서 선언서를 읽었다”는 장면은 실제와 다릅니다. 왜 이런 …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