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도시락 폭탄. 교과서와 위인전에서 한 번쯤 들어 본 이름입니다.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는 일본 왕의 생일 행사와 상하이 점령을 기념하는 전승 축하식이 함께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 단상을 향해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졌고, 일본군 수뇌부가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당시 판결문과 신문조서를 펼쳐 보면, 우리가 90년 넘게 불러 온 ‘윤봉길 도시락 폭탄’과는 조금 다른 장면이 나옵니다. 윤봉길 의사가 준비한 폭탄은 두 개였습니다. 하나는 보자기에 싼 도시락 모양, 다른 하나는 끈 달린 물통 모양이었습니다. 그날 단상으로 실제로 날아간 것은 어느 쪽이었을까요?
먼저 30초 만평 퀴즈로 풀어 보고, 아래에서 당시 기록을 하나씩 확인해 보겠습니다.
오늘의 문제
1932년 상하이 축하식, 그날 단상으로 실제로 날아간 것은?
① 손에 든 도시락 폭탄
② 어깨에 멘 물통 폭탄
③ 품속에 숨긴 폭탄
정답 보기
정답은 ② 어깨에 멘 물통 폭탄입니다. 판결문에는 윤봉길 의사가 손에 들었던 도시락형 폭탄을 땅에 두고, 어깨에 멘 물통형 폭탄의 발화용 끈을 당겨 단상을 향해 던졌다고 적혀 있습니다. 만평 속 두 물건이 똑같은 크기와 명암으로 나란히 놓인 이유입니다. 그림만 봐서는 어느 쪽인지 알 수 없도록, 그날의 ‘선택’을 퀴즈로 남겨 두었습니다.
판결문과 신문조서가 말하는 그날
윤봉길 도시락 폭탄 이야기를 바로잡는 열쇠는 두 문서입니다. 하나는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가 공개한 판결문이고, 다른 하나는 1932년 5월 경성지방검찰청이 작성한 신문조서입니다.
판결문은 투척 장면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윤봉길 의사는 손에 들고 있던 도시락형 수류탄을 땅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어깨에 메고 있던 물통형 수류탄을 벗어 발화용 끈을 당기며 단상 가까이 나아가, 단상을 겨냥해 던졌습니다.
신문조서에는 윤봉길 의사 본인의 설명이 남아 있습니다. 공원으로 가는 자동차 안에서 보자기에 미리 구멍을 내 두었고, 현장 상황을 보니 두 개를 다 던질 여유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끈이 달려 던지기 쉬운 물통 모양을 골랐고, 도시락 모양은 땅에 두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 폭탄으로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를 비롯한 일본군과 외교 수뇌부가 숨지거나 크게 다쳤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현장에서 붙잡혀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그해 12월 19일 일본 가나자와에서 순국했습니다.

폭탄의 모양은 어디서 왔을까
그렇다면 왜 하필 도시락과 물통이었을까요. 서울신문 1992년 기사에 따르면,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는 한 일본 신문 보도를 읽고 거사 방법을 의논했습니다. 4월 29일 행사에 일본 거류민은 도시락과 수통을 챙겨 참가하라는 안내였습니다.
축하식에 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고 있을 물건. 그 모양이라면 행사장 안까지 자연스럽게 들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소풍처럼 꾸민 제국의 축제가, 스스로 그 문을 열어 준 셈입니다. 만평 속 말풍선 “소풍 오듯 즐기십시오!”는 이 아이러니를 압축한 창작 문구입니다.

※ 안내를 실은 일본 신문의 이름과 날짜는 이번 글에서 원문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신문 보도’로만 적었습니다.
왜 ‘윤봉길 도시락 폭탄’으로 기억됐을까
도시락 쪽은 처음부터 자결용이었다는 설명이 오랫동안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1992년 신문 기사도 도시락을 자결용 폭탄으로 소개했습니다. 반면 신문조서 속 진술을 그대로 읽으면 두 폭탄 모두 던질 생각이었고, 끈 때문에 물통을 골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느 해석이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입니다. 그날 실제로 날아간 것은 물통이었고, 도시락은 땅에 남았습니다. ‘윤봉길 도시락 폭탄’이라는 이름은 사건의 전부가 아니라, 두 폭탄 가운데 하나의 이름만 기억에 남은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만평 속 사실과 상징
| 그림 요소 | 구분 | 근거·설명 |
|---|---|---|
| 도시락형·물통형 두 폭탄 | 사실 | 판결문, 신문조서 |
| 물통을 던지고 도시락은 땅에 둠 | 사실 | 판결문, 신문조서 |
| 도시락·수통 지참 안내 | 사실(2차 자료) | 서울신문 1992. 일본 신문 원문은 미확인 |
| 축배를 드는 장갑 낀 손 | 창작 상징 | 축하식이라는 명분을 표현 |
| 말풍선 “소풍 오듯 즐기십시오!” | 창작 문구 | 실제 발언이 아닌 만평적 압축 |
| 붉은 모서리의 신문, 기울어지는 잔 | 만평적 과장 | 정답 뒤 다시 읽히도록 둔 장치 |
| 윤봉길 의사의 얼굴 | 그리지 않음 | 실제 인물을 닮게 재현하지 않기 위해 손만 표현 |
심화 퀴즈
윤봉길 의사는 도시락 폭탄을 왜 땅에 내려놓았을까요? (신문조서 속 본인 진술 기준)
① 자결하려고 남겨 두었다
② 물통에 끈이 있어 던지기 쉬워서
③ 도시락 폭탄이 불발이라서
정답 보기
정답은 ②입니다. 신문조서에서 윤봉길 의사는 두 개를 던질 여유가 없었고, 물통 모양 폭탄에 끈이 있어 던지기 쉽다고 생각해 그쪽을 골랐다고 진술했습니다. ①은 오랫동안 널리 퍼진 해석이고, 1992년 신문 기사에도 실렸습니다. 해석은 지금도 갈리지만, 본인의 진술은 ②를 가리킵니다.
함께 생각해 볼 질문
우리는 왜 90년 넘게 이 사건을 ‘윤봉길 도시락 폭탄’으로 불렀을까요. 기억은 사건 전체가 아니라 가장 이야기하기 좋은 한 장면을 붙잡곤 합니다. 기록을 다시 펼쳐 보는 일은 그 한 장면 옆에 놓여 있던 다른 물건을 찾아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1946년 고국으로 돌아와 서울 효창공원에 모셔졌습니다.
출처와 확인 메모
- 판결문의 투척 경위: 청년일보 기고, 2025.8.15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제공 판결문 인용)
- 신문조서 진술(1932년 5월 4~18일 신문, 5월 19일 작성): 뉴스토마토 「박성현의 만인보로 보는 일상사」 10화, 2018.8.13
- 일본 신문의 도시락·수통 지참 안내, 피해 상황, 순국과 유해 봉환: 서울신문 「이달의 독립운동가 윤봉길의사」, 1992.4.1
- 확인일: 2026년 10월 5일
※ 판결문과 신문조서는 원문이 아닌 인용 기사로 확인했습니다. 일본 신문 안내 기사의 매체명과 게재일, 사상자 수는 자료마다 달라 적지 않았습니다. 본문 이미지는 모두 AI로 생성한 창작 만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