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대조영 — 230년 제국이 한 줄로 남은 이유

“230년을 살고 한 줄로 남았다”

발해는 698년에 세워져 926년까지 이어진 나라입니다. 당나라는 이 나라를 해동성국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배우는 발해는 교과서 몇 쪽이 전부입니다.

228년을 버틴 나라의 기록이 왜 그것밖에 남지 않았을까요. 흔히 짐작하는 이유와 실제 이유는 다릅니다. 이번 편은 그 차이를 다룹니다.

쇼츠에서 낸 퀴즈의 정답과 해설은 정답 공개 단락에 있습니다. 먼저 본문부터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발해를 세운 대조영, 시작은 도망이었다

668년 고구려가 무너진 뒤 유민들은 당나라 곳곳으로 옮겨졌습니다. 대조영 집단이 배치된 곳은 영주였습니다. 지금의 랴오닝성 차오양 일대로, 당이 동북쪽 이민족을 통제하던 거점 도시였습니다.

696년 거란족 이진충이 당에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통제력이 흔들리자 대조영의 아버지 걸걸중상은 말갈의 걸사비우와 함께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빠져나갑니다. 요해지를 차지하고 성벽을 쌓아 방어 태세를 갖췄습니다.

당은 곧바로 치지 않고 회유부터 했습니다. 걸걸중상에게 진국공을, 걸사비우에게 허국공을 봉했습니다. 두 사람은 거절했습니다. 다시 당의 지배 아래로 들어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당은 이해고를 보냅니다. 걸사비우가 먼저 전사했고, 걸걸중상도 이동 중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은 무리를 떠맡은 사람이 대조영이었습니다.

그는 도망만 치지 않았습니다. 천문령이라 기록된 고개에서 추격군을 되받아쳤고, 이해고만 겨우 살아 돌아갔다고 사서는 적었습니다. 그리고 동모산에 성을 쌓았습니다. 발해의 시작이었습니다.

발해라는 이름은 뒤에 붙은 것이고, 처음 내건 국호는 진국이었습니다. 나라를 연 것은 정예 군대가 아니라 살림을 짊어지고 걷던 이주민 집단이었습니다.

발해고를 쓰는 유득공이 밤 규장각에서 여러 사서를 펼쳐놓은 김홍도 풍 만평
빌린 책은 스물두 종. 빈 종이는 한 장이었다.

발해가 해동성국으로 불리기까지

발해는 8세기에 빠르게 몸집을 키웠습니다. 3대 문왕 때 당의 3성 6부제를 받아들였고, 신라와 이어지는 교역로인 신라도를 열었습니다.

문왕이 세상을 떠난 뒤 25년 동안 여섯 명의 왕이 바뀌었습니다. 재위가 1년도 못 채운 왕이 여럿이었습니다. 안쪽이 크게 흔들리던 시기였습니다.

흐름을 돌려세운 사람이 10대 선왕 대인수입니다. 818년 즉위 이후 영토가 크게 넓어졌고, 당은 그제야 발해를 해동성국이라 불렀습니다.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라는 뜻입니다.

규모는 숫자로 남았습니다. 『신당서』 발해전은 5경 15부 62주를 적었습니다. 중요한 거점에 5경을 두고 15부 아래 62주를 둔 3단계 행정 체계였습니다. 완비 시점은 9세기 전반으로 보는 것이 통설입니다.

그러나 926년, 발해는 거란의 침입으로 무너집니다. 698년부터 헤아리면 15대 228년입니다. 고구려가 버틴 시간과 견줄 만한 길이였습니다.

이만한 나라가 왜 몇 쪽으로 줄어들었을까요. 답은 힘이 아니라 기록에 있었습니다.

발해가 남긴 자체 역사서는 한 권도 전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나라를 설명하는 문장은 대부분 당과 일본이 남긴 기록에서 건져 올린 것입니다.

858년 뒤에 쓰인 책, 유득공의 발해고

1784년,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유득공이 『발해고』를 썼습니다. 그는 고려가 이 나라의 역사를 편찬하지 않은 것을 통탄하며 붓을 들었습니다.

참고한 책은 스물두 종이었습니다. 『구당서』와 『신당서』를 비롯한 중국 서적 열일곱 종, 『삼국사기』와 『고려사』 같은 국내 사서, 『속일본기』 등 일본 기록까지 끌어모았습니다.

이 책이 남긴 가장 큰 것은 개념이었습니다. 유득공은 신라와 이 나라를 남북국으로 불렀고, 오늘날 학계가 쓰는 남북국시대라는 틀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다만 귀속을 둘러싼 한국과 중국 학계의 견해는 지금도 갈립니다. 자세한 사료 정리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발해 항목천문령전투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평 해설 — 돌아선 자리

발해 건국 직전 대조영과 봇짐을 진 피난 행렬을 그린 김홍도 풍 수묵담채 만평
행렬은 앞으로 간다. 말 한 마리만 뒤를 본다.

첫 번째 연출 장치는 방향입니다. 행렬은 전부 앞으로 걷는데, 선두의 말 한 마리만 뒤를 향해 있습니다. 창끝도 진행 방향의 반대를 겨눕니다. 도주가 반격으로 바뀌는 순간을 대사 없이 각도 하나로 보여주기 위한 배치입니다.

두 번째 장치는 짐입니다. 대조영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갑옷이 아니라 봇짐을 졌습니다. 아이를 감싼 여인은 아예 뒤를 보지 않습니다. 나라를 세운 쪽이 군단이 아니라 이주민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이 한 명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같은 화면에 담았습니다.

지배 색조를 쪽빛으로 잡은 것도 의도입니다. 해 지기 직전의 푸른 어스름은 결단의 순간이자, 곧 지워질 시간의 색입니다.

현대의 통찰 — 원본을 가진 쪽이 원본을 지웠다

발해의 사연을 옛날 일로만 넘기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같은 구조가 아주 최근에도 반복됐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인류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사건에서 벌어졌습니다.

달 착륙 원본 테이프는 어디로 갔나

1969년 7월, 인류가 처음 달을 밟는 장면은 슬로스캔이라는 형식으로 지상국에 수신됐습니다. 방송용으로 변환되기 전의 원본은 우리가 본 화면보다 훨씬 선명했습니다.

2006년부터 3년간 NASA는 그 원본을 찾았습니다. 조사를 이끈 리처드 나프저는 2009년, 45개가량의 테이프가 다른 수십만 개와 함께 회수되어 지워지고 재사용됐다는 결론을 내놓았습니다.

악의는 없었습니다. 1980년대 초 위성 사업에 쓸 공테이프가 모자랐고, 담당자에게 그것은 역사 자료가 아니라 데이터 저장 매체였습니다. 보존이 누구의 업무도 아니었을 뿐입니다.

결국 남의 사본으로 되살렸다

복원에 쓰인 것은 NASA 안이 아니라 바깥에 있던 사본이었습니다. CBS 뉴스 아카이브의 방송 녹화본, 호주에서 수신해 넘긴 테이프, 존슨우주센터 보관고에서 36년간 아무도 열어보지 않은 필름이었습니다.

2009년 40주년에 공개된 영상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원본보다 흐린 판본이지만, 그것이 남은 전부였습니다.

발해와 NASA 사이에는 천이백 년이 있습니다. 그런데 구조는 같습니다. 당사자가 남기지 않았고, 남의 기록으로 뒤늦게 되살렸고, 되살린 판본은 원본보다 초라했습니다.

강하다고 남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발해는 228년을 버틴 나라였고, 아폴로 11호는 20세기 최대의 사건이었습니다. 둘 다 부족했던 것은 힘이 아니라 남기는 습관이었습니다.

회사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프로젝트를 끝낸 사람은 다음 일로 넘어가고, 몇 년 뒤 그 일을 아는 사람은 옆 부서가 남긴 회의록 몇 줄뿐입니다.

기록은 대개 일이 끝난 다음 순위로 밀립니다. 급한 일이 늘 먼저이고, 정리는 나중에 하면 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 나중이 오지 않았을 뿐, 지우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어느 쪽에도 없었습니다.

“230년을 살고 한 줄로 남았다”

퀴즈 정답과 해설

정답: ① 발해도, 뒤를 이은 고려도 역사서를 쓰지 않았다

유득공은 『발해고』 서문에서 고려가 이 나라의 역사를 편찬하지 않은 것을 통탄했습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관련 열전은 없습니다. 자체 사서 역시 한 권도 전하지 않습니다.

②번을 고르셨다면 짚고 갈 사실이 있습니다. 문자는 있었습니다. 1980년과 1981년에 발굴된 정효공주 묘지석에는 왕을 황상이라 적은 문장이 남아 있습니다. 쓸 줄 알았는데 남기지 못한 것이 이 사건의 아이러니입니다.

③번은 익숙한 서사지만 근거가 없습니다. 거란이 발해 기록을 불태웠다는 기록은 사료에 나오지 않습니다. 기록이 없는 자리를 누가 없앴다는 이야기로 채우는 일이야말로, 이 편이 경계하려는 지점입니다.

심화 퀴즈 — 이것 맞히면 역사 고수

정답은 이 글 맨 아래 ▼ 클릭 — 심화 퀴즈 정답 보기에 있습니다. 스크롤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보세요.

심화 퀴즈. 당이 토벌군을 보내기 전, 걸걸중상과 걸사비우를 회유하려고 내민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① 영주 일대를 자치로 다스릴 권한

② 진국공과 허국공이라는 작위

③ 당의 정규 무관직 임명장

지난 편에서는 뽑아준 임금이 나흘 만에 등을 돌렸습니다. 사약을 받은 개혁가의 시신을 거둔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제59편 조광조와 기묘사화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다음 편 예고 — 제61편: 간송 전형필

아무도 적지 않아 사라진 나라를 봤습니다. 다음 편은 반대편 이야기입니다. 나라가 지키지 못한 것을 한 사람이 사비로 사들였습니다.

1943년, 전형필은 기와집 열 채 값이라 전해지는 돈으로 책 한 권을 삽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었습니다.

기록은 저절로 남지 않습니다. 누군가 값을 치릅니다.

만평한국사는 한국사의 한 장면을 김홍도 풍 만평과 퀴즈로 풀어냅니다.

심화 퀴즈는 맞히셨나요? 댓글로 알려주세요.

▼ 클릭 — 심화 퀴즈 정답 보기

정답: ② 진국공과 허국공이라는 작위

당은 두 집단이 요해지에 성벽을 쌓고 방어 체계를 갖추자 먼저 회유를 시도했습니다. 걸걸중상에게 진국공을, 걸사비우에게 허국공을 봉한 것이 그 방법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거절했습니다. 다시 당의 지배 아래로 들어갈 뜻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회유가 실패하자 이해고의 토벌군이 출동했고, 그 추격전 끝에 발해가 세워졌습니다. 뒤에 국호로 쓰인 진국이라는 이름이 이때 당이 내민 작위와 겹친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230년을 살고 한 줄로 남았다”

함께 읽으면 좋은 이야기

제33편 안시성 전투 — 세계 최강이 88일을 공격했는데, 이긴 사람의 이름이 없습니다.

제28편 고려 금속활자 — 세계 최초로 만들고도, 역사는 남이 가져갔습니다.

제4편 정조 비밀편지 — 태우라고 한 편지가 남아서, 성군의 다른 얼굴이 드러났습니다.

제45편 고려 무역 벽란도 — 세계가 기억한 이름은 왕이 아니라 상인이었습니다.

제59편 조광조와 기묘사화 — 뽑아준 임금이 나흘 만에 등을 돌렸습니다.

만평퀴즈 유튜브 영상 전편 보기

#발해 #대조영 #천문령전투 #해동성국 #동모산 #발해고 #유득공 #남북국시대 #선왕대인수 #한국사 #한국사퀴즈 #역사퀴즈 #만평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