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백전 — 나라가 찍고 안 받은 돈, 흥선대원군 화폐 실험의 결말

“궁은 올라갔는데 백성은 무너졌다”

당백전은 1866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재원으로 발행한 화폐입니다. 명목가는 상평통보의 100배였지만 실질가는 5~6배에 불과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 동전이 만들어진 배경부터 조정이 자기 돈을 안 받은 모순, 백성이 떠안은 결과까지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정리합니다.

당백전은 왜 만들어졌나

1865년,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임진왜란 때 불타 270여 년간 폐허였던 경복궁을 다시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왕실 권위를 세우고 국방력을 강화하겠다는 명분이었습니다.

공사 초기에는 원납전이라는 기부금 형태로 재원을 충당했지만, 모금액이 해마다 급감했습니다. 원납전은 ‘원해서 내는 돈’이 아니라 ‘원통하게 내는 돈’이라는 원성까지 나왔습니다.

1866년 10월, 우의정 김병학이 고액 화폐 주조를 건의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상평통보 1문의 100배 가치를 지닌 고액 화폐 발행을 결정합니다.

같은 해 11월부터 금위영에서 본격 주조가 시작되어 약 6개월간 1,600만 냥이 유통됐습니다. 당시 상평통보 전체 유통량이 약 1,000만 냥이었으니, 시장에 기존의 1.5배가 넘는 돈이 갑자기 풀린 셈입니다.

찍은 쪽이 안 받은 돈, 당백전의 모순

이 화폐의 핵심 모순은 단순합니다. 조정은 경복궁 공사 물품 구입 대금은 새 동전으로 지급했습니다. 그런데 세금을 걷을 때는 당백전을 받지 않았습니다.

만든 쪽이 자기가 발행한 돈을 안 믿는데, 백성이 믿을 리 없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정부는 당백전을 물품 구입 수단으로만 사용하였을 뿐 공과 수납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고액 화폐의 명목가는 상평통보의 100배였지만, 동전에 들어간 금속의 실질 가치는 고작 5~6배에 불과했습니다. 500원짜리 동전에 만 원이라고 써서 강제로 쓰게 한 것과 같습니다.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유통 반년 만에 쌀 한 석 가격이 700문에서 4,000문 이상으로, 반년 만에 약 6배 폭등했습니다. 상평통보를 녹여 고액 동전을 위조하는 사람까지 나타났습니다.

결국 1868년, 장령 최익현이 이 화폐의 폐해를 지적한 상소를 올렸고, 당백전 통용은 전면 금지됐습니다.

당백전 상평통보 비교 호조 관리 만평
호조 관리가 당백전과 상평통보를 비교한다. 이 동전이 정말 백 배일까.

당백전이 남긴 교훈

이 사태는 조선 후기 화폐 경제사에서 가장 극단적인 인플레이션 사례입니다. 정부가 명목가만 높여 화폐를 찍으면 시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준 역사적 실험이었습니다.

경복궁 중건은 왕실 권위 회복이라는 목표를 이뤘지만, 그 비용은 화폐가치 붕괴로 백성에게 전가됐습니다. 더 자세한 사료는 조선왕조실록(sillok.history.go.kr) 고종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평 해설

당백전 만평 흥선대원군 상인 거부 풍자
대원군은 새 동전을 자랑하고, 상인은 거부한다.

이번 만평에는 두 가지 연출 장치가 있습니다. 첫째는 화면을 가로지르는 길을 기준으로 좌측의 혼란스러운 시장과 우측의 화려한 공사장을 대비시킨 구도입니다.

둘째는 흥선대원군의 자신만만한 표정과 빈 쌀가마니를 든 농민의 체념한 표정을 대각선으로 배치한 것입니다. 동전 하나를 들어 보이는 손짓에 모든 풍자가 응축돼 있습니다.

현대적 통찰

“궁은 올라갔는데 백성은 무너졌다”

당백전의 핵심 구조는 “만든 쪽이 안 받는 돈”이었습니다. 조정은 명목가 100배를 선언해놓고 정작 세금으로는 받지 않았습니다. 이 모순은 160년이 지난 지금도 형태만 바꿔 반복되고 있습니다.

양적완화 — 달러를 찍어서 월가를 살린 2008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벤 버냉키는 양적완화를 단행했습니다. 2014년까지 약 3조 5,000억 달러가 시장에 풀렸습니다.

명분은 경기 회복이었지만, 그 돈은 주식과 부동산으로 흘러갔습니다. 자산을 가진 쪽은 더 부유해졌고, 월급 생활자는 치솟는 물가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공사비로 당백전을 뿌리고 세금으로는 안 받은 것처럼, 양적완화로 풀린 돈은 자산 보유자에게만 돌아갔고 인플레이션 비용은 서민이 떠안았습니다.

테라-루나 사태 — 만든 쪽이 안 믿은 코인, 2022년

2022년 5월, 권도형이 설계한 암호화폐 테라(UST)와 루나(LUNA)가 이틀 만에 99.9% 폭락했습니다. ‘1달러 고정’을 약속한 스테이블코인이었지만, 가치를 뒷받침하는 실물 자산은 없었습니다.

피해 규모는 약 400억 달러, 한국에서만 20만 명 이상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권도형은 2023년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됐습니다.

명목가만 선언하고 실질 가치가 없었던 당백전, 1달러를 약속하고 실물이 없었던 테라. 만든 쪽이 자기 돈을 안 믿는 구조는 같은 결말을 맞았습니다.

경복궁은 지금도 서울에 서 있습니다. 건물은 남았지만 비용을 떠안은 백성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퀴즈 정답

📌 제40편 퀴즈 정답

정답: ② 조정 스스로 당백전의 가치를 믿지 않아서

조정은 당백전을 경복궁 공사비로는 지급했지만, 세금 수납에서는 당백전을 받지 않았습니다. 만든 쪽이 자기 돈을 안 믿은 셈입니다.

심화 퀴즈 — 이것 맞히면 역사 고수

정답은 이 글 맨 아래 ▼ 정답 보기를 클릭하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화 퀴즈. 당백전 주조를 처음 건의한 인물과 직책은?

① 흥선대원군 본인이 직접 발의
② 우의정 김병학이 건의
③ 호조판서가 단독으로 추진

제39편 심화 퀴즈 정답 공개

📌 제39편 · 광해군 심화 퀴즈 정답

정답: ② 전세를 보아 판단하고 후금과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라

광해군은 명나라 원군 요청에 강홍립을 보내면서도 후금과의 정면 충돌을 피하라는 밀지를 내렸습니다. 실리를 추구한 중립외교의 핵심 사례입니다.

“옳은 선택을 한 왕이 쫓겨났다”

다음 편 예고

제41편은 명성황후 시해(을미사변)입니다. 일본 낭인들이 궁궐에 침입한 그날 밤, 왕비가 왕궁 안에서조차 안전하지 못했던 사건을 다룹니다.

마무리

📚 이 주제와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이 사건과 함께 조선의 권력과 민생이 얼마나 멀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들입니다.

조선 부동산 사기 — 400년 전에도 서류 한 장이 집을 빼앗았다

을사늑약 — 다수결로 팔린 나라의 진실

조선시대 월급 실화 — 쌀로 받고, 밀리고, 부업도 금지

세종 세금 여론조사 — 17만 명에게 물어본 왕

광해군 — 옳은 선택을 한 왕이 쫓겨났다

▼ 제40편 심화 퀴즈 정답 보기

심화 퀴즈 정답: ② 우의정 김병학이 건의

1866년 10월, 우의정 김병학이 경복궁 재건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당백전 주조를 건의했고 고종의 재가를 받았습니다.

페이소스: “궁은 올라갔는데 백성은 무너졌다”

만평퀴즈 유튜브 영상 전편 보기

#당백전 #흥선대원군 #경복궁중건 #상평통보 #조선화폐 #인플레이션역사 #최익현상소 #고종실록 #원납전 #만평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