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컷만평 퀴즈 H001 · 일제강점기 · 1936년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 검열관이 돋보기로 들여다본 사진에는 있어야 할 일장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인쇄가 흐려서 그렇군”이었습니다. 같은 사진을 지운 두 신문, 한쪽은 통과하고 한쪽은 적발됐습니다. 그리고 1년 뒤, 두 신문의 운명은 예상과 반대로 갈렸습니다.
🔍 만평 퀴즈
그림 속 ‘통과’ 도장을 받은 신문, 조선중앙일보는 그 뒤 어떻게 됐을까요?
① 동아일보보다 먼저 속간됐다
② 다시 나오지 못하고 폐간됐다
③ 총독부 기관지에 흡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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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② 다시 나오지 못하고 폐간됐다
조선중앙일보는 사건 뒤 휴간에 들어갔고, 사장 여운형의 퇴진과 주주 내분을 겪다가 1937년 11월 5일 발행 허가의 효력을 잃고 폐간됐습니다. 적발돼 무기 정간을 당한 동아일보는 1937년 6월 3일 속간됐습니다. 검열을 ‘통과’했다는 사실이 신문을 지켜 주지는 못한 셈입니다.
일장기 말소 사건, 지운 신문은 동아일보만이 아니었다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이 1위, 남승룡이 3위에 올랐습니다. 시상대 사진 속 손기정은 부상으로 받은 묘목을 가슴 앞에 든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그의 운동복 가슴에는 일장기가 달려 있었습니다.
이 사진을 국내에 보도하면서 가슴의 일장기를 지운 신문은 둘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기억하는 동아일보, 그리고 여운형이 사장으로 있던 조선중앙일보입니다. 조선중앙일보의 게재일은 자료에 따라 8월 13일자 또는 8월 14일자(13일 석간)로 엇갈리고, 동아일보도 8월 13일자 지방판에서 이미 지웠다는 서술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는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인쇄 기술 탓” — 총독부 문서가 남긴 판단
조선중앙일보의 사진은 검열을 통과했습니다.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의 비밀 자료 「조선출판경찰개요」(1936)는 이 사진을 두고 “졸렬한 인쇄 기술에 의한 것이라 판단”했다고 전해집니다. 일장기가 사라진 것이 의도가 아니라 조잡한 인쇄 때문이라고 본 것입니다.
반면 8월 25일자 동아일보 2면에 실린 사진은 적발됐습니다. 여러 기자가 연행됐고, 사진 수정을 제안한 체육부 기자 이길용을 비롯한 5명은 40일 동안 구금됐다가 언론계를 떠나야 했습니다. 동아일보는 무기 정간 처분을 받았습니다.

통과와 적발, 그 뒤 엇갈린 운명
| 시기 | 조선중앙일보 | 동아일보 |
|---|---|---|
| 1936년 8월 13~14일 | 일장기 지운 사진 게재 → ‘인쇄 탓’으로 검열 통과 | 8월 13일자 지방판에서 지웠다는 서술 있음 |
| 1936년 8월 25일 | — | 2면 사진 적발, 기자 연행, 이길용 등 40일 구금 |
| 1936년 가을 이후 | 휴간, 사장 여운형 퇴진, 주주 내분 | 무기 정간, 다수 해고 |
| 1937년 6월 3일 | — | 속간 |
| 1937년 11월 5일 | 발행 허가 효력 상실 → 폐간 | — |
검열에서 통과한 쪽이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적발된 쪽은 이듬해 다시 신문을 냈습니다. 다만 조선중앙일보의 폐간은 이 사건 하나 때문이 아니라 휴간 뒤의 경영 내분까지 겹친 결과라는 점은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만평 다시 읽기 — 사실, 상징, 과장
| 그림 요소 | 구분 | 의미 |
|---|---|---|
| ‘통과’ 도장 | 사실 기반 | 조선중앙일보 사진이 검열을 통과한 사실. 정답 뒤에는 ‘살려 주지 못한 도장’으로 다시 읽힙니다. |
| “인쇄가 흐려서 그렇군” | 창작 문구 | ‘인쇄 기술 탓’ 판단을 만평식으로 옮긴 말. 실제 검열관의 대사가 아닙니다. |
| 돋보기 속 선명한 망점 | 상징 | 흐리지 않은데도 흐리다고 한 판단의 아이러니. |
| 수갑과 사슬 | 만평적 과장 | 동아일보 기자들의 연행·구금을 사물로 표현. |
| 빈 의자와 중절모 | 상징 | 언론계를 떠나야 했던 기자들. 사람 대신 빈자리로 그렸습니다. |
| 얼굴 없는 선수 실루엣 | 연출 원칙 | 실존 인물의 얼굴과 감정을 지어내지 않기 위한 처리. |
흔한 오해 세 가지
① “일장기는 동아일보가 지웠다” — 조선중앙일보도 지웠습니다. 동아일보의 사건이 널리 알려진 것은 적발과 처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② “조선중앙일보는 이 사건 때문에 폐간됐다” — 사건이 계기가 됐지만, 사장 퇴진과 주주 내분이 겹친 복합적인 결과입니다.
③ “검열을 통과했으니 무사했다” — 처음 통과했을 뿐, 이후 휴간에 들어갔고 끝내 다시 나오지 못했습니다.
🧩 심화 퀴즈
일장기 말소 사건 뒤 동아일보가 받은 처분과 그 결과로 맞는 것은?
① 무기 정간을 받았다가 1937년에 속간됐다
② 폐간됐다가 1940년에 복간됐다
③ 벌금만 내고 발행을 계속했다
정답과 해설
정답 ① 무기 정간을 받았다가 1937년에 속간됐다
동아일보는 무기 정간 뒤 1937년 6월 3일 속간됐습니다. ②가 헷갈리는 이유는 ‘1940년’이 실제로 의미 있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1940년 8월 총독부의 언론 통제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함께 강제 폐간됐고, 두 신문은 해방 뒤에야 다시 나왔습니다. 일장기 말소 사건의 처분과는 별개의 일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일장기 말소 사건이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의 시상대 사진을 보도하면서, 국내 신문이 운동복 가슴의 일장기를 지우고 실은 사건입니다.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가 지웠습니다.
Q. 조선중앙일보 사진은 왜 검열을 통과했나요?
총독부 비밀 자료 「조선출판경찰개요」(1936)는 일장기가 보이지 않는 것을 조잡한 인쇄 탓으로 판단했다고 전해집니다(2차 인용).
Q. 동아일보는 어떤 처벌을 받았나요?
8월 25일자 사진이 적발돼 기자들이 연행됐고, 이길용 기자 등 5명이 40일간 구금됐습니다. 신문은 무기 정간된 뒤 1937년 6월 3일 속간됐습니다.
Q. 조선중앙일보는 언제 폐간됐나요?
휴간 뒤 사장 퇴진과 주주 내분을 거쳐 1937년 11월 5일 발행 허가의 효력을 잃고 폐간됐습니다.
출처와 확인 메모
- 박성현, 「만인보로 읽는 한국사 70화」, 뉴스토마토, 2017.6.19 — 원문 보기 (「조선출판경찰개요」 1936 인용, 두 신문의 결말)
- 경기일보, 「인천을 빛낸 인물 이길용」 — 원문 보기
- 채백,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 사건 연구」, 『한국언론정보학보』 39호, 2007 — PDF
-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 경성 사법 문서 목록 D_100-018 (‘동아일보 발행정지처분 해제 경과, 조선중앙일보 휴간 후의 경위’ 항목) — PDF
확인 메모(2026.9.30): 「조선출판경찰개요」 인용은 2차 자료를 통한 것으로 원문 대조 전입니다. 조선중앙일보 게재일(8.13/8.14)과 휴간의 성격(자진 휴간/정간 처분)은 자료마다 엇갈려 본문에서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만평 이미지는 모두 AI로 생성한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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