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 5일이면 우리는 당연하게 어린이날을 맞습니다. 그런데 어린이날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첫 어린이날은 5월 5일이 아니었습니다. 1923년 5월 1일, 아이를 ‘어린이’라 부르며 한 사람으로 존중하자던 그날은 처음부터 일제 경찰의 눈총을 받았습니다.
5월 1일은 노동절과 겹치는 날이었습니다. 감시와 탄압이 심해지자 어린이날은 ‘5월 첫 일요일’로 옮겨 다녀야 했고, 1930년대 후반에는 아예 열리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쉬는 어린이날 5월 5일은 대체 어디서 온 날짜일까요? 30초 만평 퀴즈로 먼저 풀어 보세요.
오늘의 한컷만평퀴즈
해방 이듬해 다시 열린 어린이날, 왜 하필 5월 5일로 굳어졌을까요?
- 그해 첫 일요일이 5일이라서
- 단오 명절과 날짜를 맞추려고
- 방정환 선생의 생일이라서
정답과 해설 보기
정답: ① 그해 첫 일요일이 5일이라서
일제강점기 동안 어린이날은 ‘5월 첫 일요일’에 열렸습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다시 행사를 열었을 때, 그해 5월 첫 일요일이 마침 5일이었습니다. 국가기록원은 이때부터 날짜가 해마다 달라지는 불편을 막기 위해 5월 5일을 기념일로 삼았다고 설명합니다.
② 단오는 음력 5월 5일이라 양력 날짜가 해마다 바뀌고, ③ 방정환은 11월에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만평 속 순사의 소매 밑에 가려진 칸이 바로 ‘5’입니다. 지금의 5월 5일은, 5월 1일에서 쫓겨나 일요일을 찾아 옮겨 다니던 날짜가 마지막에 내려앉은 자리입니다.
어린이날 유래: 처음엔 5월 1일이었다
어린이날의 뿌리는 두 번의 5월 1일에 있습니다. 1922년 5월 1일, 방정환과 김기전 등이 이끌던 천도교소년회가 창립 1주년을 맞아 ‘어린이의 날’을 선포했습니다. 이듬해인 1923년 5월 1일에는 서울의 소년단체 40여 곳이 모인 조선소년운동협회가 천도교 교당에서 첫 어린이날 행사를 열었습니다. 국가기록원은 이 두 날을 어린이날의 기원으로 봅니다.

그날 어른들에게는 ‘어른에게 드리는 글’이 배포됐습니다. 그 안에는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시오”라는 부탁이 들어 있었습니다. 선물도, 놀이도 아닌 존댓말이 첫 부탁이었던 셈입니다. 나이 어린 사람을 아랫사람으로 대하던 시절, 아이를 독립된 인격으로 대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이 선언을 두고 세계 최초의 어린이 인권 선언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국제사회의 ‘아동 권리에 관한 제네바 선언'(1924)보다 한 해 앞섰다는 점에서 나오는 평가입니다.
왜 ‘5월 첫 일요일’로 쫓겨났을까
5월 1일은 노동절(메이데이)이기도 했습니다. 일제 경찰은 이날 모이는 사람들을 경계했고, 어린이날 행사도 감시와 탄압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1920년대 후반, 어린이날은 ‘5월 첫 일요일’로 날짜를 옮겼습니다. 자료에 따라 바꾼 해를 1927년 또는 1928년으로 적고 있어, 여기서는 연도를 하나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일제가 소년단체에 해산 명령을 내리면서 어린이날 행사는 1930년대 후반 끊겼습니다. 이 역시 자료마다 1937년, 1939년으로 갈립니다. 어린이날을 널리 알린 방정환은 그보다 앞선 1931년, 서른 남짓한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린이날 5월 5일 이유: 1946년의 첫 일요일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어린이날 행사가 다시 열렸습니다. 일제강점기의 관례대로 5월 첫 일요일을 택했는데, 그해 5월 첫 일요일이 마침 5일이었습니다. 이날 열린 기념식이 제24회 어린이날입니다. 이후 해마다 날짜가 바뀌는 불편을 없애기 위해 5월 5일로 고정됐고, 1961년 「아동복지법」에 5월 5일이 명시됐으며, 1975년 공휴일이 되었습니다.

만평 다시 보기: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상징일까
만평은 사건을 그대로 옮긴 그림이 아닙니다. 사실은 글로 전하고, 과장은 그림으로만 했습니다.
| 그림 속 요소 | 구분 | 설명 |
|---|---|---|
| 5월 1일 첫 어린이날 | 사실 | 1922·1923년 모두 5월 1일 |
| 일요일로 옮겨 감 | 사실 | 노동절과 겹쳐 감시·탄압, 1920년대 후반 변경 |
| 가려진 ‘5’ 칸 | 사실을 상징화 | 1946년 5월 첫 일요일 = 5일 |
| 지우개로 동그라미를 지우는 순사의 손 | 만평적 과장 | 감시와 탄압을 한 동작으로 압축한 창작 |
| “그날은 안 돼!” / “그럼 언제 해요?” | 창작 문구 | 실제 사료의 대사가 아님 |
정답을 알고 다시 보면 아이들의 말풍선이 다르게 읽힙니다. “그럼 언제 해요?”라는 질문에 역사가 내놓은 답은, 스물세 해 뒤 일요일이던 5일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총독부의 ‘아동보호일’
덧붙여 알아 둘 기록이 하나 있습니다. 이주희의 연구(「1920년대 조선총독부의 ‘아동보호일’ 제정과 그 성격」, 『역사와 교육』 33, 2021)에 따르면, 조선총독부는 1927년 5월 5일을 ‘아동보호일’로 정했습니다. 명분은 아동 보호였지만, 연구는 그 목적이 미래의 ‘제국 신민’을 길러내는 데 있었다고 분석합니다. 어린이를 존중하자던 조선인의 어린이날과, 어린이를 길러 쓰겠다던 총독부의 날이 같은 5월에 나란히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의 5월 5일은 일제가 정한 날짜를 따른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1946년 날짜를 정한 이유로 국가기록원이 밝힌 것은 ‘그해 5월 첫 일요일’입니다. 두 날짜가 겹치는 점은 흥미롭지만, 둘 사이의 인과 관계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어린이날 옆에 나란히 놓으면
요즘은 어린이날이 주말에 걸리면 대체공휴일까지 붙습니다. 하루라도 더 아이들과 보내라는 배려입니다. 100년 전의 어린이날은 정반대였습니다. 쉬는 날을 하루 더 받기는커녕, 감시를 피해 스스로 일요일을 찾아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어른들에게 건넨 첫 부탁은 ‘아이에게 존댓말을 써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선물과 나들이가 익숙해진 지금, 100년 전의 그 부탁은 오히려 지금 더 새롭게 들립니다.
심화 퀴즈
1923년 첫 어린이날, 어른들에게 나눠 준 글에 들어 있던 부탁은 무엇이었을까요?
- 아이에게 존댓말을 써 달라
- 학교를 더 지어 달라
- 이날 선물을 마련해 달라
정답과 해설 보기
정답: ① 아이에게 존댓말을 써 달라
‘어른에게 드리는 글’은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되 부드럽게 대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어린이날의 출발점은 선물이 아니라 ‘존중’이었습니다.
출처와 확인 메모
- 국가기록원 「사진 대한민국 — 어린이날 개요」
-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 어린이날」
- 서울시 내 손안에 서울 「엄마! 어린이날은 어떻게 생겼어요?」(2020)
- 서울시 내 손안에 서울 「최초의 어린이날은 5월 1일」(2024)
- 서울시 내 손안에 서울 「1953년의 어린이날 풍경」
- 프레시안 「애초 어린이날은 5월 5일이 아닌 5월 1일이었다」(2022)
- 이주희, 「1920년대 조선총독부의 ‘아동보호일’ 제정과 그 성격」, 『역사와 교육』 33, 2021
확인일 2026-10-30. 날짜 변경 연도(1927/1928)와 중단 연도(1937/1939)는 자료마다 달라 연대로만 표기했습니다. 1923년 행사 참가 인원과 전단 수는 자료마다 달라 쓰지 않았습니다. 본문 그림은 모두 AI로 생성한 만평이며, 장면과 말풍선은 상징적 표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