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덕이 임금에게 청한 단 하나

“전 재산을 주고 구경 하나를 받았다”

김만덕은 1795년 제주 흉년에 전 재산을 털어 곡식을 사들인 사람입니다. 조정이 소원을 묻자 그가 청한 것은 구경 한 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구경 한 번을 이루어 주려고 조정은 없던 자리 하나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왜 그래야 했는지, 그리고 같은 흉년에 곡식을 낸 남자들은 무엇을 받았는지가 이 글의 핵심입니다.

쇼츠 퀴즈의 정답과 해설은 퀴즈 정답 보기에 있습니다. 먼저 사건부터 순서대로 보시면 정답이 훨씬 잘 읽힙니다.

김만덕과 1795년 제주의 흉년

제주는 흉년에 특히 약한 땅이었습니다. 논이 적어 곡식을 스스로 대기 어려웠고, 바닷길이 끊기면 육지에서 들어오던 곡식마저 멈췄습니다.

1790년 이후 흉년과 태풍이 겹쳤고, 1794년에는 바람과 바닷물 피해가 특히 컸습니다. 제주목사 심낙수는 조정에 구휼미 2만 섬을 요청했습니다. 백 년 만에 있을 만한 재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조정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1795년 윤2월, 구휼미 5천 섬을 실은 배 열두 척이 제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다섯 척이 바다에서 부서졌습니다.

배가 가라앉은 자리에서 김만덕이 움직였습니다. 그는 제주에서 장사로 재산을 모은 여성이었습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관가의 기안에 이름이 올랐다가, 스무 살이 넘어 관에 사정을 아뢰어 양인으로 돌아왔다고 채제공의 「만덕전」은 전합니다.

김만덕이 궁궐 앞방에 앉아 있는 김홍도 풍 만평
한양의 겨울 밤. 아무도 적을 칸을 몰랐다.

김만덕이 한 일은 단순합니다. 천금을 내어 배를 마련하고, 육지 연해로 건너가 곡식을 사들였습니다.

사들인 곡식 가운데 일부로 친척과 은혜를 입은 사람들을 먼저 돌본 뒤, 나머지는 모두 관아로 보냈습니다.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뜻이었습니다. 곡식의 정확한 양은 기록마다 달라 지금도 하나로 확정되지 않습니다.

김만덕이 임금에게 청한 단 하나

1796년 11월 25일, 조정의 기록에 그의 이름이 올라갑니다. 제주목사가 장계를 올려 그가 재물을 풀어 굶주린 백성을 살렸다고 보고한 것입니다.

상을 내리려 하자 김만덕은 사양했습니다. 소원을 묻자 답은 이랬습니다. 바다를 건너 한양에 올라가 임금이 계신 곳을 한 번 바라보고, 금강산 일만이천 봉을 구경하면 여한이 없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쉬운 소원처럼 들리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1629년 이후 제주 사람은 섬을 나갈 수 없었습니다. 출륙금지령 때문입니다. 목사가 육지행을 허락하면서 첫 번째 문이 열렸습니다.

두 번째 문이 더 어려웠습니다. 당시 규정으로 벼슬이 없는 사람은 임금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조정은 김만덕을 내의원의 차비대령 행수의녀로 충원합니다. 흔히 의녀반수라 부르는 그 자리입니다.

실무가 없는 명예직이었습니다. 만나게 해 주려고 만든 자격이었습니다. 같은 기록에는 금강산을 구경하고 돌아갈 때 지나는 고을마다 양식과 경비를 넉넉히 주라는 명도 함께 적혀 있습니다.

김만덕은 한양에서 우의정 윤시동의 부인 처소에 머물렀고, 궁궐에 나아가 혜경궁 홍씨를 비롯한 왕실 어른들을 만났습니다. 정조는 초계문신 친시의 시험 주제로 만덕전을 내걸기까지 했습니다. 그해 조정의 화제였다는 뜻입니다.

이듬해 봄, 김만덕은 금강산을 두루 보고 제주로 돌아갔습니다. 그때 나이 쉰여덟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가 눈에 걸립니다. 같은 흉년에 곡식을 낸 사람이 그만은 아니었습니다. 고한조는 대정현감에 올랐고, 홍삼필에게는 순장이라는 벼슬이 내려졌습니다. 남자들에게는 실제 자리가 갔습니다.

김만덕을 기록한 사람들

김만덕의 이야기가 오늘까지 남은 것은 기록해 둔 사람들 덕분입니다. 채제공은 한양에서 그를 직접 만나 「만덕전」을 남겼고, 이면승도 같은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정약용과 김정희, 조수삼 같은 문인들도 글과 시를 보탰습니다.

다만 기록끼리 어긋나는 대목이 있습니다. 기안에서 빠져 양인이 되었다는 내용은 채제공의 글에만 나오고, 조정의 관찬 기록은 끝까지 그를 기녀라고 적었습니다.

김만덕은 1812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뒷날 제주에 유배된 김정희는 은광연세, 은혜의 빛이 여러 세대로 이어진다는 뜻의 글씨를 남겼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우리역사넷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만평 해설 — 김만덕의 아침

김만덕이 돈궤 앞에서 곡식 섬을 가리키는 김홍도 풍 만평
되를 놓친 사환. 붓을 멈춘 아전.
연출 장치 1 — 바닥이 보이는 돈궤

화면 오른쪽 아래의 궤는 뚜껑이 끝까지 젖혀져 있고, 엽전 꾸러미가 절반쯤 빠져나가 나무 바닥이 드러납니다. 받는 사람이 아니라 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한 컷으로 보여 주는 장치입니다.

연출 장치 2 — 허공에서 멈춘 아전의 붓

오른쪽 아전은 문서를 든 채 붓을 멈추고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놀라서가 아니라 적을 칸을 찾지 못해서입니다. 이 편의 풍자는 인물이 아니라 그 빈칸에 있습니다.

현대적 통찰 — 제도는 내는 쪽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회사나 학교, 모임에서 가장 많이 내놓은 사람이 정작 가장 어색한 자리에 서 있는 장면을 본 적 있으신가요. 규정에 그런 사람을 위한 항목이 없어서, 급하게 상 이름을 하나 지어 붙이는 일 말입니다.

김만덕의 이야기를 오늘의 말로 옮기면 이렇게 됩니다. 조정에는 곡식을 낸 사람에게 벼슬을 주는 절차가 이미 있었습니다. 고한조와 홍삼필이 받은 것이 그 절차의 결과입니다.

문제는 그 절차가 여성을 전제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조정은 규정을 고치는 대신, 실무가 없는 자리를 하나 얹어 형식을 맞췄습니다. 제도가 사람을 담지 못할 때 흔히 벌어지는 일입니다.

기부를 했는데 고지서를 받은 사람

2002년, 생활정보지 수원교차로를 창업한 황필상은 보유 주식과 현금을 모교 아주대학교 쪽에 내놓았습니다. 200억 원대 규모였고, 장학재단이 세워져 수백 명이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2008년, 재단에 140억 원의 증여세가 부과됩니다. 대기업의 편법 승계를 막으려고 만든 조항이 그의 기부에도 그대로 걸린 것입니다. 누구도 그 조항을 미리 챙기지 못했습니다.

소송은 팔 년을 끌었습니다. 2017년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원심을 파기환송했고, 그해 승소로 확정됐습니다. 그 사이 그는 고액 체납자로 이름이 오르내렸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이백이십 년이 놓여 있지만 구조는 같습니다. 제도는 받는 쪽과 빼돌리는 쪽을 살피도록 설계되어 있고, 대가 없이 내놓는 쪽은 대체로 상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이 나타나면 제도는 두 가지 중 하나를 합니다. 없는 자리를 급히 만들어 붙이거나, 가장 비슷하게 생긴 조항을 그냥 적용해 버리거나입니다. 앞의 것은 명예직이 되고, 뒤의 것은 고지서가 됩니다.

그가 구경을 청한 진짜 이유

어쩌면 그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자기에게 돌아올 자리가 애초에 없다는 것을요. 그래서 제도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도가 막고 있던 것을 청한 것입니다. 바다 건너기와 금강산 말입니다.

전 재산을 주고 구경 하나를 받았다. 이백이십 년 뒤에도, 크게 내놓은 사람이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쇼츠 퀴즈 정답

정답: ① 나라가 벼슬을 하나 내려서

벼슬이 없는 사람은 임금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정은 내의원 차비대령 행수의녀라는 명예직에 그를 충원했습니다. 알현 자격을 만들기 위한 절차였습니다.

2번을 고르셨다면 절반은 맞히신 것입니다. 제주목사의 장계와 허락으로 섬을 나가는 문은 실제로 열렸습니다. 다만 궁궐 문은 문서가 아니라 관직으로만 열렸습니다.

3번도 근거가 있습니다. 그는 우의정의 부인 처소에 머물렀고 왕실 어른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입궐한 뒤의 일이지 입궐의 자격은 아니었습니다.

심화 퀴즈 — 이걸 맞히면 역사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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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제공의 「만덕전」은 김만덕이 스무 살 넘어 양인으로 돌아왔다고 적었습니다. 그렇다면 1796년 조정의 관찬 기록은 그를 무엇이라고 적었을까요?

① 의녀(醫女)

② 기녀(妓女)

③ 상고(商賈)

지난 편에서는 밤하늘을 보며 한 말이 오십 일 뒤에 증거가 된 과정을 다뤘습니다. 말은 그대로였고 듣는 자리만 바뀌었습니다. 제63편 남이 장군

다음 편 예고 — 제65편 허난설헌

죽기 전에 자기 시를 모두 태우라고 이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는 조선이 아니라 나라 밖에서 먼저 읽혔습니다.

안에서 지운 이름을 밖에서 먼저 알아본 이야기입니다.

만평한국사는 한 편의 역사를 김홍도 풍 만평과 퀴즈로 풀어냅니다. 쇼츠 구독과 블로그 즐겨찾기를 눌러주시면 다음 편을 놓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조용히 내놓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댓글로 한 줄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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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② 기녀(妓女)

1796년 11월 25일 조정의 기록은 김만덕을 제주의 기녀 만덕이라고 적었습니다. 양인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채제공의 글에만 나오고, 나라의 문서는 옛 표기를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재산도 명예직도 왕의 접견도 그 두 글자를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이름표를 고치는 일은 재산을 내놓는 일보다 어려웠습니다.

“전 재산을 주고 구경 하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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